미국과 캐나다에서는 12월 경에 Happy holidays.
라는 표현을 방송이나 광고에서 자주 볼 수 있다. 12월에는 대표적인 공휴일인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Merry Christmas.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삿말을 많이 썼지만 시간이 갈 수록 Happy holidays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Happy holidays는 '휴일 잘 보내라'라는 의미로 크리스마스 전에 쓰이는 덕담이다. Merry Christmas의 대체용으로 만들어진 '정치적으로 옳은 표현'으로 미국에서는 1970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 옳은 표현이란 누구에게도 불쾌감을 줄 수 없는 표현을 말한다. Merry Christmas가 불쾌감을 준다니?!?
Merry Christmas의 한국식 표현은 '축 성탄'으로, 크리스마스, 즉 성탄절을 기념하는 인삿말이다.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인데, 알다시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가 기독교다. 따라서 Merry Christmas가 유대교, 이슬람교 같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방송사와 기업들이 의식적으로 Merry Christmas라는 말을 피하고 있다.(...)
Happy holiday가 아니고 Happy holidays인 것도 이 때문이다. Happy holiday라고 하면 특정 휴일을 지칭할 수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종교들의 명절들을 전부 묶어서 Happy holidays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법정 공휴일은 타종교들의 명절이 아닌 어디까지나 크리스마스인데 크리스마스 덕분에 하루 쉬는 것은 불쾌감을 주지 않나 보다.(...)
기업들이야 소비자들의 눈치를 봐야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관공서까지 크리스마스 공포증을 앓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시는 12월이 되면 전통적으로 네이선 필립스 스퀘어에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Chirstmas tree)를 세운다. 그런데, 2002년, 토론토 시청 직원들이 밥 잘먹고 느닷없이 이 나무의 이름을 타 종교인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holiday tree로 바꿨고 이 사실을 공문까지 발송해서 알리는 패기를 보였다. 시민들은 당연히 분노했고 유대인 이민자 2세인 멜 래스트먼 시장은 진화에 나서 이 나무의 이름을 바꾸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실제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holiday tree로 부르는 관공서, 학교가 꽤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크리스마스 트리라 하지 못 하고
2006년, 토론토의 한 연방 법원에서 재직 중이던 마리용 코헨 판사는 법원 로비에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타 종교인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며 치울 것을 주문했다.(...) 절대 이분들을 화나게 하면 안 돼
2007년, 오타와의 한 공립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 노래인 '실버벨'의 가사 중 '크리스마스'를 festive(축제)로 개사해 합창부에게 부르게 했다.(...)
뿐만 아니다. 캐나다 관공서나 상점에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같은 이유로 아기 예수, 십자가, 천사등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장식물을 보기가 힘들다. 크리스마스의 '크리스'가 그리스도를 의미하는데, 그리스도 없는 그리스도의 날이 되버렸다.
크리스마스를 지우려는 이같은 움직임에 대한 불만도 크다. 크리스마스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법정 공휴일인데, 크리스마스 덕분에 하루 쉬면서 왜 크리스마스를 부정하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게다가 크리스마스는 종교적 색채가 많이 희석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연애질을 하거나 가족,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명절일 뿐인데 말이다.
크리스마스 논란은 토박이와 이민자들 간의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미국과 캐나다는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반면, 크리스마스로 종교의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민자거나 이민자 2세이기 때문이다.
Merry Christmas와 Happy holidays의 사용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미묘하게 갈린다. 기독교인, 토박이, 우파 성향 사람들은 Merry Christmas를, 타종교인, 이민자, 좌파 성향 사람들은 Happy holidays를 쓰는 경향이 있다.
필자는 무신론자에 이민자다. 하지만, 이민자들의 종교를 위해 크리스마스라는 기존의 문화 유산을 지우려는 것은 종교를 떠나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만일 기독교인이 이스라엘에 가서 하누카가 불쾌하다거나, 파키스탄에 가서 라마단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불평하면 과연 들은 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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